* 그놈과의 크리스마스 *
"사랑은,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척 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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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던 사연을 제 나름
대로 내용을 추가하여 꾸며 본 픽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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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이니? 나야, 미욘이.. 오늘 뭐해?"
"응.. 그래.. 그럼 잼있게 지내...."
"거기 현주네죠? 현주구나! 나야, 미욘이..."
"아.. 바쁘겠구나. 잘지내구.. 동엽씨에게도 안부전해줘.."
정아네 집에도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미욘인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하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약속 없이 집
에 있는 친구들이 있겠어?
부모님은 모임에 가시고 언니도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대
낮부터 꽃단장하고 나간 텅빈집.. 거실에 장식해 놓은 크리스
마스 트리가 왠지 쓸쓸해 보이는 날이었습니다..
무얼 할까 망설이던 미욘은 냉장고에서 거북이 아스크림을 꺼
내 입에 물고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평소에 그렇게도 좋아하
던, 하나먹으면 양에 안 찬다고 두세개씩 먹던 아스크림.. 얼
마 전까지 그놈하고 끝말잇기 시합해서 진사람이 거북이 아스
크림 사주기 내기를 하곤 했었지... 갑자기 그놈 생각에 미욘
은 코끝이 시큰해져 왔습니다.. 나쁜 놈.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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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우리 학교에서 문화유적답사가는데 안가면 교
수님들한테 찍혀! 그래서 찍히면 나 학점 안나오고 학점안
나와서 혹시라도 졸업 못하게 되면 등록금 또 내야하고 또
내가 학점때매 졸업 늦게 했단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면 시
집 못 갈 수도 있자노, 그니까 말야.. 꼭 가야혀!! 안가면
죽음인 거시여! 참, 글구 마랴.. 회비는 10만원이래!!"
한달 남은 크리스마스... 나는 좀 찜찜했지만 엄마를 속여 10
만원을 삥땅해씸미다. 워따가 그돈을 쓸라고 그랬냐고요? 히~
내 사랑, 용달이에게 해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그런 거
지요.
용달이는 그 애의 별명 이여요.. 실제 이름은 용현인데 난 맨
날 용달이라고 부르지요. 열달 전 소개팅으로 만난 용달이...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해본적도 없고 따스하게 대해주지도 못
했지만 내 첫 남자 친구이며 나에겐 그 누구보다 멋지게 보이
는 놈이죠..
엄마에게 10만원을 삥땅쳐서 나는 용달이에게 선물할 예쁜 스
웨터와 향이 좋은 향수.. 그리고 깜찍한 카드를 샀답니다. 그
짓말 할때는 그렇게 가심팍이 뛰더니만 선물을 사면서는 어쩜
그리도 즐겁던지.. 이래서 남자생긴 딸년은 모두 도둑 년이라
는 말이 생겼나봐요..
그치만요! 문화유적답사간다고 그짓말하고 뜯어낸돈이라서 난
2박 3일 동안 친구 집에서 할 일없이 죽치느라고 정말 죽는줄
알았다니깐요.. -_-;;;
용달이와 함께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 정말 기다려지는 크리
스마스 였습니다. 눈이 내리면 더더욱 좋을 텐데...
열달동안 그 애와 사귀어 오며 서로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난 알아요, 그 애 역시 나
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요.. 글고 또 모르죠.. 이
번 크리스마스에 분위기 잡고 그애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
을 해올지두요.. 푸힛! 부끄러버라~
"미욘이니? 나야...... 용달."
"어? 너 이 밤중에 웬일이야? 동문모임 있다고 하더니.. 술
마니 마셨구나? 어디야?"
"응.. 좀 많이 취했어. 근데 꼭 오늘 너에게 해야할말이 있
어서.. 나 니네 집 앞이야."
"그래??? 나 지금 나갈게, 기둘려!"
술에 취한 용달이가 나에게 꼭 오늘 할말이 있다?? 무슨 말일
까?? 오홋~!! 오케바리!!!! 요로분! 술에 취한 남자가 여자친
구한테 할말이 머시겠어요? 괜히 맨 정신에는 쪽팔려서 말 못
할것 같으니까 술한잔 마시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괜히 술취
한척 연약한 척 하면서 품에 안겨서 뽀뽀도 한 번 해볼라고..
크하하하핫! 드뎌, 오늘 고백을 듣는구나!!!
나는 생각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흥분이 되었어요.. 그래서
용달이에게 먹일 술 깨는 약과 따뜻한 캔 커피를 준비해서 얼
렁 뛰어 나갔죠.. 근데, 짜식두... 이틀만 있으면 크리스마스
인데 이왕이면 그날 고백하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히히
힛~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용달아~~~~(다정)"
오잉잉???? 그런데요....... 으허허허허허허허헉!!!!!
우리집 앞에는 용달이가 혼자가 아니라 어떤년의 부축을 받으
며 서 있는 것이 아니거써요? 순간, 나는 머리끝까지 열이 뻗
쳤지만 지성인으로서 꾹 참으며 용달에게 물었죠.
"무슨 일이야?(버럭)"
죄발!!!!!!!!!!!!!!!!! 몇 분전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서 나는 조금이나마 내가 상상했던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용달
이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여씸미다.
"미욘아.. 미안해, 난 너보다 혜영이를 더 좋아해."
그순간 용달이를 부축하고 있던 그년의 눈에선 야리꾸리한 눈
빛의 미소가 번뜩였습니다. 오마이갇! 이런 졸라 화가나는 일
이 있을 수가!!!!!!!
나는 들고 있던 캔 커피를 그대로 그놈과 그년에게 던져 버렸
고 그 캔 커피는 그놈의 머리통을 맞고 튕겨서 그년의 뒷통수
를 살짝 스친 후 떨어지더군요.
"아얏!!!! 아파!!"
소리 지르는 그년의 목소리를 들으며 통쾌하다는 미소를 지으
며 돌아섰어요... 하지만 요, 왜! 왜왜왜!!! 눈물은 그렇게도
흐르는 것인지...... 나쁜 놈!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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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그놈을 위해 엄마한테 개뻥까지 쳐서 삥땅친 돈으
로 산 선물은 옷장구석으로 쳐박혀 버렸구요. 나는 아직도 분
이 덜풀리는 마음에 집안에 틀어박혀 이렇게 거북이 아스크림
만 하루에도 대여섯개씩 먹어치우고 있답니다.
"크리스마스 날이라 그런지 재미있는 프로도 많이 하네, 크
하하하!!"
혼자서 지내는 크리스마스.. 썰렁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텔
레비전 소리도 일부러 크게 해놓고 콧노래도 흥얼거려 보았습
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왜! 왜왜왜!!!! 왜 그렇게도 허전하고
마음이 아픈건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하고 쏟아졌습
니다.
"그래! 이미욘은 울지 않아! 씩씩해야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모자를 쓰고 장갑도 끼고, 집에서 나
왔습니다. 커플끼리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참 아
름답게 보였어요..
"으?│~ 으?│~"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공원을 뛰기 시작했죠.. 한바퀴, 두
바퀴, 세바퀴.... 한참을 그렇게 뛰다가 너무도 숨이 차서 벤
취에 앉았습니다.. 옛날엔 이렇게 용달이랑 밤에 조깅하고 벤
취에 앉아서 끝말잇기 게임을 했었는데....
그놈 생각을 씻어 내려고 크리스마스 날 한밤중에 뛰었으면서
도 나는 또다시 그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보처럼.....
"고래사냥~"
그때 고개를 숙인 내 머리 위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
어요..
"내가 먼저 시작한거야.. 고래사냥~"
"..................... 너.......?"
"지는 사람이 거북이 아스크림 사주기다? 자... 고래사냥~"
어떻게.. 용달이가... 갑자기 눈물이 또 왈칵 쏟아지는 거 있
죠? 목이 메어서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용달이
는 웃었어요..
"어? 나 인제 카운트다운 할거야, 못하면, 거북이 아스크림
사주는 거시야... 자, 다섯.. 넷.. 셋.. 둘.. 둘반.. 둘반
의 반...."
"냥떠러지!!!!!!!!!!!!!!!!!"
"오잉? 냥떠러지? 푸하하하하, 그게 머야! 진거야!!"
"아냐, 원래 나 처럼 이쁜 사람들은 낭떠러지를 냥떠러지라
고 하는 거시야!"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용달이는 못참겠다는 듯이 배를 잡고 뒹굴며 웃었고, 나도 따
라 웃었습니다.
세상에는 궁금한 것이 참 많아요. 싼타 할아버지는 정말루 있
는 것인지... 별똥별을 보며 비는 소원은 정말 이뤄지는 것인
지... 또... 지금 용달이가 이렇게 다시 내게 돌아오게 된 것
은 어떻게 된 일인지...
하지만, 하지만요! 어떤 일들은 그냥 그렇게 궁금한채로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용달이에게 아
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답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만
큼은 용달이가 내 곁에 있으니까요.....
나는 아직도 웃고 있는 용달이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습니
다. 그리고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용달이의 귓가
에 대고 속삭여 주었어요.
"사랑해, 나쁜놈아!!!!"
p.s.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
세요~ 삐꼴로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