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버터빵] E.T,반장 그리고 연애 (3377/37582)

추억의 유가촌(유머가 가득한 마을)
홈 > FORUMS > 유가촌 레전드1 > 버터빵
유가촌 레전드1

002.jpg


천리안, 나우누리... 추억의 그 시절에 대한 회상 . . . 유가촌 (유머가 가득한 마을), 푸하, 모뎀 인터넷 시절. . .

이제는 인터넷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들어진  그 시절 세상 살던 이야기를 AV툰모아에서 들려드립니다.

 

[나우누리][버터빵] E.T,반장 그리고 연애 (3377/37582)

포럼마니아 1 8,153

알고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되면서( 의도적으로 국민학교라는 말을 쓰려 한다. 난
아직은 이 말이 정겨운 20대인가보다..) 난 왠지 쫑긋한 머리에 목소리가 높고
치마를 입은 소위 "여자" 라는 지구를 정복한 두 생물중의 한 생물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해 버렸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물론 서로
좋아하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되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은
잘 생겨야 했다.... 흑. 하얀 얼굴에 머리도 약간 곱슬인데다( 그때는 왜
그렇게 곱슬인 머리가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쭉쭉 뻗은 내 머리도
곱슬거리게 하려고 실험시간에 알콜램프로 앞머리를 그을린 적도 있었다. 물론
결과는... 단백질 타는 냄새만 진동하게 하고는 1달간 올백인 상태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아직도 들려온다. 올백맨맨맨맨매애애앤~~ ) 쌍까풀도 있어야
했고 키도 얼마만큼 받쳐 주어야 했다. 하지만 난 머리도 쭉쭉 뻗었고, 얼굴도
하얀 편도 아니었고, 쌍꺼풀은 눈을 뒤집고 찾아봐도 없는데다 키도 큰 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연애하기는 글러먹은 생김새였던 것이다.

두번째 조건으로는.. 공부를 잘해야 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때는 수업시간에
질문을 받았을때 또랑 또랑하게 대답을 하면 " 저 자식 열라 재수없다..."
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국민학교때는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가 인기가 좋았었다.
일단은 멋있어 보이니까. 하지만 매일 학교가기전에 연필을 깎아주시며 "
오늘도 우리 진호 공부 잘 하고 와라~ " 라는 엄마 볼 면목도 없이 선생님의
질문에 " 저기요..그게요.. 모르겠어요. 히죽~ " 하고 웃어버리는 난 철없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비참할 정도로 나와는 맞지 않는 두가지 조건 이외에도 한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 그건 .. 바로 반장이 되면 되는 거였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권력은 돈과 여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 같다. 뭐가
어찌되었든 반장이면 왠지 우리들보다는 높은 존재, 선생님과 더 가까운 존재
같았고 그가 칠판에 " 떠든 사람: 최태섭. 이준석. 주형준 ( 바보) " 라고
적을때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의 손에 나의 방과후 화장실 청소의 운명을
맡겨야 했다.

이리하여.. 공식은 성립되었다. 난 여자라는 존재를 인식했고, 그 여자라는
존재는 3가지중 어느 하나를 만족해야 좋아하는데, 그중 2가지는 절대로 될
수 없었다. 그럼 남은 길은 한가지. 난 반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얍. 하지만
결심이라는 건 주위환경의 변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반장이 되고픈
나는 여전히 키도 작고 쌍꺼풀도 없었으며 공부도 잘 못하는 가장 보통스러운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나이스 초이스 덕분에 난 구세주의
손길을 얻게 되었다.

그시절.. 지구는 온통 어떤 영화의 물결에 빠져 있었다. English Teacher가
아닌,..음.. 그게... 하... 암튼 머리는 납작이에 목은 길구 손가락은 무슨
소세지처럼 길쭉한 E.T라는 외계생명체는 온 지구를 누비고 다녔고, 노트에,
티셔츠에, 연필에, 크레용에, 암튼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물건엔
E.T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난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주신 E.T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티셔츠가 나에게 반장이라는 자리를 가져다
줄 줄은.

반장선거 하기 약 10일전. 난 아무런 사전 선거 운동도 하지 않았다. 부잣집
영식이 녀석은 슬슬 아카시아 껌을 돌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잘 생긴 주영이
녀석은 괜히 여자애들과 어울리며 미소를 흘리는 횟수가 많아졌지만 난 그저
반장이 되리란 결심만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쌍한 놈이였다. 그래서
그날도 아이들이랑 방과후에 그냥 나와서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었는데..

" 야. 야. 이거 잼 없다. "

" 아냐. 미끄럼틀에서 꺼꾸로 내려와봐라. 그럼 재밋다."

" 절루 가~~"

" 너~~ 내 신발주머니 내 놔~~~ "

" 어. 호진양~! 너 옷에 E.T 있네? "

내 이름을 꺼꾸로 뒤집은 "호진양" 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던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 응. E.T는 나의 친구거든. "

" 우오오오오~~!!!! "

" 증거 있어? 증거 대봐 봐 봐~! "

" 그럼 우리 E.T 놀이 하자. "

" 그게 뭔데? "

" 그러니까, 내가 E.T 하고 니네중에 누구 치면 이제 걔가 E.T야. 그리고 걔가
다른애 치면 또 E.T구. 우린 도망치는거야. 잡히지 않게."

" 와~~~ 하자하자~~ "

증거를 대 보란 말에 난데없이 E.T 놀이를 하자고 했던 나나, 계속 해 왔던
치기놀이에서 단지 술래 이름을 E.T로 바꾸니까 새로운 놀이인듯 열심히 했던
우리는 아무리 봐도 이성적 판단을 논하기엔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E.T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각자 엄마에게 땡깡을 부려서 나와
같은 E.T 티셔츠를 입고 놀이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노는 우리를 다른애들은
무지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운명의 반장선거시간이 되었다.

" 자. 오늘은 반장선거를 하는 날이죠? 우선 여러분들이 후보를 추천해 보세요."

" 저요 저요~!! "

" 응. 춘식이. 누구 추천할꺼에요? "

" 여..영식이를 추천하는데요... "

" 추천하는 이유도 대야죠. "

" 응.. 왜냐면.. 짜장면 사줬어요~! "

" 으응... 뭐.. 우선은 추천 받은 걸로 하죠. 그럼 다른 사람 추천해 보세요~~ "

" 선생님~ 저요~ "

" 응. 민자야. 누구 추천하니? "

" 전 주영이 할래요. 주영이는 제가 찜했어요. "

" 찜한게 뭔에요 민자? "

" 그러니까 주영이는 나중에 민자 신랑 될꺼에요. "

" 그래서 추천하는거에요? "

" 네~~~~~~ "

" 휘유.. 이제 2명 추천되었네요. 더 추천할 사람 없어요? "

쿠욱~~~~!

" 아~! 야~! 왜 찔러~!"

" 민석이 왜 일어났어요? "

쿠욱~!

" 아아~! 저기 선생님~! 저 양진호를 추천할래요. "

" 양진호.. 왜요? "

" 양진호는 E.T놀이를 제일 잘해요. 그리고 전에 자기 추천해주면 나중에
E.T놀이할때 대장시켜준댔어요."

" 네에.. 그럼 추천 받은 걸로 하죠.. 그럼 추천 받은 3명 앞으로 나와보세요. "

막상 아이들이 다 보는 앞으로 걸어나가려니 무지 쪽팔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 자, 이제 내가 반장이 되면 우리반을 어떻게 이끌지 말해보는 시간이에요.
우선 영식이부터 해 볼까요? "

" 안녕하십니까? 만약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신다면 우리 반을 공부도 제일
잘하고 청소도 제일 잘하는 제일 좋은 반으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제게
한표를 주시면 전 여러분께 우등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며칠은 밤을 새서 연습한 듯한 말투, 그리고 웅변학원에서 배운 손짓까지.
민석이는 그렇게 멋지게 연설을 했고 우리는 " 우등을 드리겠다" 는 말 뜻이
뭔지도 모른 채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온 걸로 봐서 민석이가 반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힘차게 박수를 쳤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은 "
우등학생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걸 잘못 말한것 같았다.

" 참 잘했어요. 영식이 말 참 잘하네.. 그럼 다음엔 주영이~ "

" 제가 반장이 되면 떠드는 사람 적을때 여러분 이름을 안적을께요. "

" 와~~~ "

참 대단한 공약이었다. 그럼 떠드는 이름 적는 란에는 누구를 적는단 말인가?
자기 이름?

" 네, 그래도 선생님이 없을땐 이름 적어야 되요.. 이제 누구 남았지? 그래,
진호 말해봐요.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주먹이 꼭 쥐어졌다. 뭐라고 말은 해야 하는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
순간, 내 눈에는 오늘도 입고온 E.T 티셔츠가 보였다.

" 여러분~! 전 E.T를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E.T를 좋아하시면 절 반장으로
찍어주세요~! "

" 와~ 와~~ 와~~~~ "

E.T놀이를 하며 심어놓은 나의 심복들이 여기 저기서 분위기를 띄웠고
아이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체 그냥 E.T 좋다니까 너도 나도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왜 E.T를 좋아하면 반장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 자, 이제 여러분께 종이를 한장씩 나누어 드릴테니까, 여기에 반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 이름을 적으세요. 한사람만 적는거에요~ "

그뒤 나온 선거 결과는 짜장면 공세에 휩쓸린 11명과 찜해놓은 것에 휩쓸린
8명을 제외한 아이들이 E.T를 사랑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내 생각에는 그
19명도 E.T를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단지 다른 유혹이 더 컷을뿐..) 내 생애
처음으로 " 감투" 라는 것을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국민학교 3학년 생활은 멋지게 반장을 맡으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성적이 안좋았던 나는 점점 선생님의 눈밖으로 나기 시작했고,
수업시간마다 질문을 하면 히죽대며 대답도 못하는 어벙이 반장을 애들도
하나둘씩 외면하기 시작했다. E.T의 인기가 식어가는 것과 동시에 말이다.

결국 난 국민학교 3학년때 어쩌면 시작되었을 수도 있는 "연애"를 11년
뒤에나 하게 되었고 한번의 쓰라림 뒤에 그냥 솔로의 길을 굳건히 가고 있다.
하지만 또 누가 아는가. 어디선가 그 시절의 빨간 E.T 티셔츠가 바람에
실려오는 날, 나의 연애가 다시 시작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E.T 말고는 말이다....


< 끝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1 Comments
❤️AVgirl쭈리❤️ 21-10-28 21:36
섹스가 더 필요해요. 알겠어요? 죽기 전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맛보고 싶어요 ... 안젤리나 졸리 언니가 한말~ 세상 모든 여자들이 이 언니 같으면 좋겠다..
제목

[ 유머가 가득한 마을 유가촌 2 입장하기 클릭! ] 

001.jpg